도입: 왜 지금 표준특허인가
2023년, 독일의 한 법원에서 흥미로운 판결이 나왔습니다. 메르세데스-벤츠가 노키아에 이동통신 표준특허 로열티를 지불해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자동차 회사가 스마트폰도 만들지 않고, 통신장비도 팔지 않는데, 왜 핀란드 통신회사에 돈을 내야 하는 걸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벤츠 자동차 안에 4G LTE 통신 모듈이 들어가 있고, 그 모듈이 노키아가 보유한 표준특허를 실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폭스바겐, BMW, 볼보 같은 다른 완성차 업체들도 이미 아반시(AVANCI)라는 IoT 특허풀에 이동통신 표준특허 로열티를 꼬박꼬박 내고 있습니다. 5G가 자동차, 스마트공장, 원격의료, 스마트시티 전반으로 퍼져나가고 있는 지금, 표준특허 로열티 문제는 더 이상 스마트폰 제조사들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표준특허가 주목받는 이유는 그것이 갖는 특수한 힘 때문입니다. 일반 특허는 설계를 바꾸면 피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표준특허는 그 표준을 따르는 제품을 만드는 순간 침해가 성립합니다. 회피가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특허입니다. 게다가 표준을 사용하는 제품이 전 세계에 수십억 개에 이르니 로열티 규모가 천문학적입니다. 현재 스마트폰 한 대에 붙는 이동통신 표준특허 집합 로열티는 단말 가격의 3.4%에서 5.6% 수준으로 추정되며, 5G 시대에는 이보다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그렇다면 산학협력단과 대학은 이 이야기에서 어떤 위치에 있을까요. 표준특허는 기업만의 영역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6G 관련 정부 R&D 과제가 본격화되면서 대학 연구실의 기술이 표준에 채택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기업과 공동연구를 할 때 결과물이 표준특허가 된다면, 산학협력단은 일반 특허와 전혀 다른 법적 구조를 다루게 됩니다. FRAND 의무, 독점 실시계약의 제한, 로열티 수익 배분 구조 — 이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오늘 강의는 바로 그 차이를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1강: 표준과 특허의 교차점
표준이란 무엇인가
표준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서로 다른 기술과 제품이 호환되도록 만든 합의된 기술 명세서입니다. 삼성 스마트폰과 애플 스마트폰이 같은 기지국에 접속할 수 있는 이유, 한국에서 구입한 전자기기를 독일 콘센트에 어댑터만 끼우면 쓸 수 있는 이유, 세계 어디서나 같은 형식의 이메일을 주고받을 수 있는 이유, 모두 표준 덕분입니다.
표준은 어떻게 만들어지느냐에 따라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사실상 표준(De Facto Standard)입니다. 시장 경쟁을 통해 자연스럽게 지배적 위치를 차지한 것으로, 누가 제정한 것이 아니라 그냥 그렇게 굳어진 표준입니다. QWERTY 키보드 자판 배열, 윈도우 운영체제, 유튜브의 영상 포맷 같은 것들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둘째는 공적 표준(De Jure Standard)입니다. ITU, ISO, IEC, 3GPP, IEEE 같은 공인된 표준화기구가 합의 절차를 거쳐 제정한 표준입니다. 이동통신(LTE, 5G NR), Wi-Fi(IEEE 802.11), 블루투스 같은 것들이 여기에 속합니다. 오늘 강의에서 다루는 표준특허 문제는 주로 이 공적 표준에서 발생합니다.
셋째는 컨소시엄 표준입니다. ETSI, W3C처럼 업계 기업들이 모여 만든 단체 표준으로, 공적 표준과 사실상 표준의 중간 성격을 띱니다. 중요한 점은, 공적 표준은 원칙적으로 누구나 무료로 열람하고 사용할 수 있습니다. 3GPP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5G NR 표준 규격서 전체를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규격서를 구현하려고 실제 제품을 만들다 보면, 그 과정에서 누군가의 특허를 밟게 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표준특허 문제가 시작됩니다.
표준특허(SEP)란 무엇인가
표준특허, 영어로 Standard Essential Patent, 줄여서 SEP는 해당 표준기술을 구현하기 위해 반드시 실시해야 하는 특허를 말합니다. 더 직접적으로 말하면, 그 표준을 따르는 제품을 만들면 그 특허를 침해할 수밖에 없는 특허입니다. 일반 특허는 경쟁 기술이 존재합니다. 누군가가 A라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한 특허를 등록했다면, 다른 기업은 B라는 방식으로 같은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A 특허를 피해갈 수 있습니다. 이것을 설계 변경 또는 회피 설계(Design-around)라고 합니다. 특허 분쟁에서 가장 흔히 쓰이는 방어 전략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SEP는 이것이 불가능합니다. 표준 규격 자체가 특정 기술 방식을 명시하고 있기 때문에, 그 표준을 따르면서 특허를 회피할 방법이 없습니다. 5G NR 표준을 따르는 스마트폰을 만들면서 5G SEP를 피할 수는 없습니다. 표준에서 이탈하면 다른 기기와 호환이 안 되니, 현실적으로 회피는 불가능합니다.
여기서 SEP가 갖는 세 가지 강력한 특성이 나옵니다.
하나는 침해 입증이 쉽다는 것입니다. 일반 특허 침해 소송에서는 상대방 제품을 역설계하고, 특허 청구항과 제품의 구성 요소를 일일이 대조하는 복잡한 작업이 필요합니다. 반면 SEP는 표준 규격서와 특허 청구항을 비교하는 것만으로 침해 여부를 상당 부분 판단할 수 있습니다. 상대방 제품이 그 표준을 따르는지 여부만 확인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둘은 로열티 규모가 크다는 것입니다. 표준을 따르는 모든 제품이 잠재적 로열티 대상이 됩니다. 전 세계에서 판매되는 5G 스마트폰, 5G 모뎀이 탑재된 노트북, 5G 기반 산업용 기기, 이 모든 것이 대상입니다. 시장 전체가 로열티 풀이 되는 구조입니다.
셋은 FRAND 의무를 부담한다는 것입니다. 이 강력한 힘에 대한 균형추로, SEP 보유자는 원하는 모든 실시자에게 공정하고 합리적이며 비차별적인 조건으로 라이선스를 제공해야 할 의무를 집니다. 이것을 FRAND 의무라고 하며, 다음 강에서 자세히 다룹니다.
주요 표준화기구 실무에서 자주 마주치는 표준화기구를 간략히 정리합니다. ITU(국제전기통신연합)는 UN 산하 기구로, 이동통신의 세대(4G, 5G, 6G)를 공식 정의하는 최상위 기구입니다. 5G를 IMT-2020으로 정의한 곳이 ITU입니다. 3GPP(3rd Generation Partnership Project)는 ITU의 정의를 받아 실제 기술 표준 규격을 만드는 곳입니다. LTE, 5G NR의 구체적인 기술 명세서가 모두 3GPP에서 나옵니다. 이동통신 SEP의 압도적 다수가 3GPP 표준과 관련됩니다. ETSI(유럽전기통신표준협회)는 3GPP의 운영 파트너이자, SEP 선언의 공식 창구 역할을 합니다. SEP 보유자가 표준특허를 선언할 때 제출하는 곳이 ETSI의 IPR 데이터베이스입니다. IEEE(전기전자공학자협회)는 Wi-Fi(802.11), 이더넷(802.3) 등의 표준을 담당합니다.
2강: FRAND 원칙
FRAND란 무엇인가
FRAND는 Fair(공정한), Reasonable(합리적인), Non-Discriminatory(비차별적인)의 앞 글자를 딴 약어입니다. SEP 보유자가 특허 라이선스를 제공할 때 지켜야 하는 원칙입니다. FRAND 의무가 생긴 배경을 이해하면 그 의미가 더 명확해집니다. SEP는 앞서 말했듯 회피가 불가능합니다. 만약 SEP 보유자에게 아무런 제약을 두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표준이 채택된 후에 “이 기술을 쓰려면 내 마음대로 정한 로열티를 내라, 싫으면 쓰지 마라”고 할 수 있습니다. 표준을 쓰지 않으면 다른 기기와 호환이 안 되니 울며 겨자 먹기로 수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특허 홀드업(Hold-up)이라고 합니다. 표준화 생태계 전체가 특정 기업의 인질이 되는 상황입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ETSI를 비롯한 표준화기구들은 표준화 과정에 참여한 기업이 자신의 특허를 표준필수특허로 선언할 때, FRAND 조건으로 라이선스를 제공하겠다는 약정을 함께 요구합니다. 이 약정이 FRAND 의무의 출발점입니다.
FRAND의 세 요소
공정성(Fair)은 특허권자와 실시권자 양쪽에 모두 공정한 조건을 의미합니다. 특허권자가 시장 지배력을 이용해 일방적으로 유리한 조건을 강요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동시에 실시자가 협상을 지연하거나 터무니없이 낮은 조건을 고집하는 것도 공정하지 않습니다.
합리성(Reasonable)은 로열티 수준이 특허의 실제 기술적 기여도에 비례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표준에 채택되었다는 사실 자체로 가치가 부풀려져서는 안 됩니다. 특허가 표준에 들어가기 전의 기술적 가치, 즉 사전적(ex ante) 가치를 기준으로 로열티를 산정해야 한다는 논리가 여기서 나옵니다. 또한 여러 SEP 보유자의 로열티를 다 합산하면 터무니없는 수준이 되는 집합적 로열티(Royalty Stacking) 문제도 합리성 원칙으로 통제합니다.
비차별성(Non-Discriminatory)은 유사한 상황에 있는 실시자들에게 동일한 조건을 적용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특정 기업에는 유리한 조건을 주고 다른 기업에는 불리한 조건을 강요할 수 없습니다. 경쟁자를 차별하거나, 국적·규모에 따라 다른 조건을 부과하는 것도 금지됩니다.
FRAND가 산학협력단에 미치는 영향
이 부분이 오늘 강의에서 산학협력단 담당자 여러분이 가장 주의 깊게 들어야 할 부분입니다. 대학이 보유한 일반 특허는 기술이전 조건을 자유롭게 설계할 수 있습니다. 특정 기업에게만 독점 실시권을 주는 것도 가능하고, 높은 로열티를 요구하는 것도 가능하며, 원하지 않는 기업에게는 아예 라이선스를 거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SEP는 다릅니다. FRAND 약정이 걸려 있는 SEP는 원하는 모든 실시자에게 라이선스를 거부할 수 없습니다. 특정 기업에게만 독점적으로 기술을 주는 것도 원칙적으로 비차별성 원칙에 위배됩니다. 이것은 기술이전 전략의 근본적인 제약입니다.
실무에서 가장 자주 충돌하는 시나리오는 이렇습니다. 대학과 공동연구를 한 기업이 “우리가 연구비를 댔으니 결과 특허에 대한 독점 실시권을 달라”고 요구하는 경우입니다. 이것이 일반 특허라면 협상으로 충분히 수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특허가 ETSI에 선언된 SEP라면, 독점 실시계약이 FRAND 의무와 충돌합니다. 계약을 잘못 체결했다가 나중에 제3자로부터 FRAND 위반 주장을 받거나, 심하면 독점금지법 위반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습니다. 계약 단계에서 SEP 여부를 반드시 확인하고, 그에 맞는 조항을 설계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FRAND 로열티는 어떻게 산정하는가
법원이 FRAND 로열티 분쟁을 해결할 때 사용하는 방법론을 간략히 소개합니다. 비교 라이선스법은 유사한 SEP 포트폴리오에 대한 실제 라이선스 거래 사례를 비교 기준으로 삼는 방식입니다. 영국과 미국 법원이 선호하는 방식입니다. 톱다운 접근법은 전체 집합적 로열티의 합리적 상한을 먼저 설정하고, 그 안에서 각 특허의 기여도 비율로 배분하는 방식입니다. 독일과 중국 법원에서 많이 활용됩니다. 기여도 기반법은 표준화 과정에서의 기술 기여도, 즉 기고문 채택 건수나 핵심 기술 여부를 기준으로 로열티를 산정하는 방식입니다.
실무에서는 이 방법론들을 복합적으로 적용하며, 어느 나라 법원에서 다투느냐에 따라 유리한 방법론이 달라집니다. 이 때문에 SEP 분쟁에서는 어느 국가 법원에서 싸울 것인지, 즉 포럼 선택(Forum Shopping)이 전략의 핵심이 됩니다.
3강: SEP 라이선싱 구조
라이선싱의 두 가지 방식
SEP를 실제로 돈으로 바꾸는 방법은 크게 특허풀 방식과 개별협상 방식 두 가지입니다.
특허풀(Patent Pool) 방식은 MPEGLA, VIA, SISVEL 같은 특허관리 대행업체가 여러 기업의 SEP를 한데 모아, 실시자에게 일괄적으로 라이선싱하는 방식입니다. H.264, HEVC 같은 비디오 코덱 표준과 MP3 같은 오디오 표준이 대표적입니다. 자동차 업계를 대상으로 한 이동통신 표준특허풀 아반시(AVANCI)도 최근 주목받는 사례입니다.
개별협상 방식은 SEP 보유자가 각 실시자와 1:1로 직접 협상하는 방식입니다. 이동통신 분야에서는 표준특허의 수가 워낙 많고 로열티 규모도 매우 커서, 다수의 특허권자들이 특허풀보다 개별협상을 선호해 왔습니다. 퀄컴, 에릭슨, 노키아, 화웨이가 운영하는 방식이 모두 여기에 해당합니다. 5G 표준특허도 4G와 마찬가지로 주로 개별협상 방식으로 라이선싱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주요 기업의 5G 로열티 요율
주요 SEP 보유 기업들이 공개적으로 발표한 5G 로열티 요율을 보면 각 기업의 전략적 방향이 보입니다.
퀄컴은 단말 판매가 $400을 상한으로 멀티모드 단말에 3.25%, 5G 싱글모드 단말에 2.275%를 적용한다고 발표했습니다. 판매가 기준 퍼센트 방식이라 고가 단말에서 수익이 극대화되는 구조입니다. 에릭슨은 단말당 고정금액 방식으로, 멀티모드 단말에 $5, 5G 싱글모드 단말에 최소 $2.5를 제시했습니다. 퍼센트 방식보다 예측 가능성이 높고, 저가 단말이 많은 시장에서도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하는 전략입니다. 노키아는 단말당 최대 €3(약 $3.54)를 제시했습니다. 노키아는 4G 특허를 5G 표준특허로 재선언하는 전략을 많이 활용하며, 보유 특허의 품질과 유효기간 관리에서 두드러집니다. 화웨이는 단말당 최대 $2.5를 발표했습니다. 다른 기업들에 비해 요율이 낮아 보이지만, 화웨이는 5G 단독 표준특허 비중이 가장 높아 장기적으로 유리한 포지션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이 회사들의 요율을 모두 합산하면 단말당 $10에서 $16 수준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것이 집합적 로열티, 즉 Royalty Stacking 문제입니다.
집합적 로열티 문제와 버티컬 산업 확산
Royalty Stacking은 여러 SEP 보유자가 각각 FRAND 조건을 충족한다고 해도, 이를 모두 합산하면 실시자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 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이 문제는 5G가 버티컬 산업으로 확산되면서 더 심각해질 수 있습니다.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수십 년에 걸쳐 SEP 보유자들과 협상 경험을 쌓고 크로스라이선스 체계도 갖춰놓았습니다. 그러나 자동차 회사, 병원, 스마트공장 운영 기업들은 이동통신 SEP 협상 경험이 전혀 없습니다. 이들을 상대로 복수의 SEP 보유자들이 동시에 로열티를 요구하기 시작하면 산업 전반에 상당한 혼란이 예상됩니다. 대학과 산학협력단도 이 흐름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스마트 헬스케어, 스마트 캠퍼스, 자율주행 기반 캠퍼스 셔틀 같은 과제들이 5G 표준 위에서 동작하기 시작하는 순간, SEP 라이선스 문제가 현실이 됩니다.
1부를 마치며
지금까지 표준특허의 기본 개념, FRAND 원칙, 라이선싱 구조를 살펴봤습니다. 핵심을 세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표준특허는 회피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일반 특허와 질적으로 다른 힘을 가집니다. FRAND 의무는 그 힘에 대한 균형추이며, 대학이 SEP를 보유할 때 기술이전 전략의 근본적인 제약이 됩니다. 그리고 5G의 버티컬 확산은 이 문제를 더 이상 통신 업계만의 이야기로 남겨두지 않습니다. 2부에서는 SEP가 실제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국가별·기업별 경쟁 현황이 어떤지, 주요 분쟁 사례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를 다룹니다.
[표준특허 SEP 등록 및 FRAND 전략 1:1 진단]
표준특허는 양보다 ‘질’과 ‘전략’의 싸움입니다. 일반 특허와는 차원이 다른 SEP의 복잡한 로직, 신무연 변리사가 명쾌한 해답을 드립니다.
귀사의 기술이 글로벌 표준이 되는 순간, 기율특허법인이 그 권리를 완성합니다.
대표 번호 : 1566-7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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