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특허

들어가며: “새로운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특허를 받으려면 새로운 발명이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그런데 미국 특허청은 여기에 한 가지 조건을 더 붙인다. 새롭기만 한 것이 아니라, 충분히 창의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생각해 보자. 누군가 “바퀴 달린 여행 가방”을 발명했다고 특허를 신청한다. 바퀴는 이미 있었고, 여행 가방도 이미 있었다. 둘을 합친 것이 세상에 없었다고 해서 자동으로 특허를 받을 수 있을까? 미국 특허법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누구든 생각해낼 수 있는 뻔한 조합이라면, 설령 그 조합이 세상에 처음 등장했더라도 특허를 줄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진보성(obviousness) 요건이다. 미국 특허법 §103이 규정하는 이 요건은 특허청 심사관이 출원을 거절할 때 가장 많이 쓰는 무기이기도 하다.

판단 기준의 출발점: Graham 판결이 만든 틀

1966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Graham v. John Deere 사건에서 진보성을 따지는 방법을 네 단계로 정리했다. 트랙터용 쟁기 부품에 관한 특허 분쟁이었는데, 이 판결에서 확립된 틀은 지금도 심사관과 법원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기본 프레임워크다.

단계 내용
1단계 기존에 어떤 기술이 있었는지 파악한다 (선행기술의 범위와 내용)
2단계 기존 기술과 이번 발명이 어디가 다른지 확인한다 (차이점 규명)
3단계 그 기술 분야의 평균적 전문가 수준을 가늠한다 (PHOSITA 수준)
4단계 상업적 성공, 오랫동안 해결 못한 문제, 경쟁사 모방 등 객관적 정황 증거를 살핀다 (2차적 고려사항)

2007년의 전환점: KSR 판결과 TSM 테스트의 붕괴

KSR 이전까지 미국 실무를 지배하던 원칙이 TSM 테스트였다. Teaching(가르침)·Suggestion(암시)·Motivation(동기)의 약자로, 선행기술 문헌에 두 기술을 합치라는 명시적 근거가 있어야만 진보성을 부정할 수 있다는 원칙이었다.

2007년 연방대법원은 KSR v. Teleflex에서 이 엄격한 공식을 정면으로 기각했다. 자동차 가속 페달 사건이었는데, 법원은 “기술자라면 상식적으로 전자 센서와 조절 페달을 함께 쓰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안다”며 문헌에 명시적 동기가 없어도 자명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이후 심사관들은 “상식적으로 뻔하다”, “예측 가능한 조합이다”라는 논리만으로 거절할 수 있게 됐다.

세 갈래로 나뉘는 판례의 지형

KSR 이후 미국 진보성 판례는 크게 세 방향으로 발전했다. 이 세 갈래를 구분하는 핵심 변수는 예측가능성(predictability)이다.

분야 예측가능성 핵심 쟁점
공통 원칙 분야 무관 거절의 논리적 충분성, 결합 정당성
화학·바이오·제약 낮음 구조-성질 관계의 불확실성, 예상외 효과
소프트웨어 복잡 기능 vs. 구현의 비자명성, §101 교차 문제

제1부: 공통 원칙 판례

이 판례들은 기술 분야를 가리지 않고 모든 §103 대응의 기본 도구로 쓰인다. 화학 OA에도, 소프트웨어 OA에도 동일하게 인용된다.

거절에는 구체적인 이유가 있어야 한다: In re Kahn

KSR 이후 심사관들이 “상식적으로 뻔하다”는 말만으로 거절하는 경우가 늘었다. In re Kahn은 §103 거절에는 단순한 결론이 아니라, 왜 그 조합이 자명한지에 대한 구체적이고 합리적인 이유(articulated reasoning with rational underpinning)가 있어야 한다고 확인했다.

심사관이 다음처럼 쓴다면 공격할 수 있다.

“It would have been obvious to combine A and B to improve efficiency.”

이에 대한 반박은 이렇다.

“The Office Action does not provide an articulated reasoning with rational underpinning as to why a person of ordinary skill in the art would have modified Reference A in view of Reference B.”

실무 포인트: OA를 받았을 때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이 이것이다. “두 문헌을 합치면 당신 발명이 된다”고만 적혀 있다면, 이유 자체가 부족하다는 반박을 먼저 제기할 수 있다.

선행 문헌이 반대 방향을 가리킨다면: In re Gurley (Teaching Away)

심사관이 “A 문헌과 B 문헌을 합치면 된다”고 하는데, 정작 A 문헌을 읽어 보면 “이 방식은 문제가 있으니 쓰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선행 문헌이 청구발명의 방향과 반대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면, 그 조합은 자명하지 않다.

“Reference A teaches away from the proposed modification because it expressly identifies the use of [claimed feature] as disadvantageous.”

Teaching Away로 약한 경우 Teaching Away로 강한 경우
선행문헌이 다른 방식을 단지 “선호”함 청구발명 방식이 문제를 일으킨다고 명시함
A, B 두 가지 선택지가 모두 나열됨 특정 방향을 명시적으로 비권장함
다른 실시예를 제안하는 정도 청구발명 구성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경고함

합치면 원래 작동을 못 하게 된다: In re Ratti & In re Gordon

두 판례는 짝을 이룬다. 심사관이 “A에 B의 구성을 추가하면 된다”고 할 때, 실제로 그렇게 하면 A 자체가 제 기능을 못 하게 되는 경우를 다룬다.

판례 반박의 핵심 적용 요건
In re Ratti “그렇게 합치면 A가 아예 작동하지 않는다” 선행발명의 기본 작동 원리(principle of operation)가 변경됨
In re Gordon “그렇게 합치면 A가 원래 하려던 일을 못 한다” 선행발명이 원래 의도한 목적(intended purpose)을 달성 불가

Ratti 논리는 단순히 “불편해진다”는 수준이 아니라, 선행문헌이 전제하는 물리적·기술적 원리 자체가 훼손된다는 수준이어야 설득력이 있다.

결과를 알고 나서 뒤돌아보는 오류: In re Rouffet (Hindsight)

후견지명(hindsight)이란, 결과를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그 결과에 이르는 과정이 쉬워 보이는 인지적 오류다. 심사관이 여러 선행 문헌을 특정 방식으로 조합할 때, 그 조합 방식 자체가 출원발명을 보고 나서야 가능해진 것일 수 있다.

KSR 이후 “후견지명이다”라는 주장만으로는 약하다. 구체적인 근거를 붙여야 한다.

약한 주장 강한 주장
출원발명을 보고 만든 조합입니다 A는 ○○ 목적, B는 △△ 목적이어서 당시에 연결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문헌에 결합동기가 없습니다 청구항의 특정 순서·조건을 가르치는 문헌이 하나도 없습니다

시장에서 증명된 가치: 2차적 고려사항

In re Cyclobenzaprine(2011)과 Apple v. Samsung(2016)은 2차적 고려사항을 진보성 최종 판단의 핵심 요소로 다루어야 한다고 확인했다. 상업적 성공,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은 문제, 경쟁사의 모방, 업계의 호평이 강력한 방어 자료가 된다.

단, 이 증거가 힘을 발휘하려면 nexus가 있어야 한다. 그 성공이나 모방이 바로 이 특허의 특징적인 구성 덕분이라는 연결고리가 입증되어야 한다.

제2부: 화학·바이오·제약 분야 판례

화학이나 제약 분야에서는 진보성 논쟁이 완전히 다른 언어로 진행된다. 핵심은 분자 구조와 효능 사이의 관계가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기계 부품은 A를 B에 붙이면 어떻게 될지 상상할 수 있다. 그런데 화합물은 탄소 하나, 수소 하나가 달라져도 약효가 완전히 달라지거나, 오히려 독성을 띠는 일이 흔하다. 이 예측 불가능성이 이 분야 판례의 출발점이다.

“비슷하게 생겼으니 뻔하다”는 논리와 반격: In re Dillon

화학·제약 분야에서 심사관이 가장 자주 쓰는 거절 논리가 있다. “선행 특허에 구조가 비슷한 화합물이 있으니, 청구한 화합물도 뻔하다”는 것이다. In re Dillon 판결은 구조적 유사성만으로 일단 거절 이유(prima facie obviousness)가 성립할 수 있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요한 반격 수단이 있다. 구조가 비슷해도 예상할 수 없는 효과(unexpected results)가 있다면 진보성을 주장할 수 있다.

“Although the claimed compound is structurally similar to the prior art compound, it exhibits unexpectedly superior [property] that was neither disclosed nor suggested by the prior art.”

주의: “우리 화합물이 더 좋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하다. 전문가들도 예상하기 어려울 만큼 다른 효과를 구체적인 비교 실험 데이터로 보여야 한다.

신약 개발 특유의 두 단계 질문: Takeda v. Alphapharm

신약 특허 분쟁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판례다. 이 판결은 진보성 판단을 두 단계로 나눴다.

단계 핵심 질문 비자명성 방어 포인트
1단계: 선택 (Selection) 왜 하필 그 화합물을 출발점(lead compound)으로 골랐는가? 수많은 후보 중 그것을 고를 이유가 당시에 없었다
2단계: 변형 (Modification) 왜 그 위치를 그 방향으로 변형했는가? 성공을 예측할 수 있었는가? 특정 치환기를 택할 동기가 없었고 효과를 예측할 수 없었다

실무 포인트: 무효 분쟁이 벌어졌을 때, 개발 당시 왜 그 후보 물질을 선택했고 왜 그 방향으로 변형했는지의 연구 노트와 내부 보고서가 핵심 증거가 된다.

“다 시도해봤으니 뻔하다”는 공격: In re Kubin

KSR이 바이오 분야에 미친 충격을 직접 보여주는 판례다.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알려져 있고, 가능한 후보 수가 제한적이며, 각 후보를 시험하는 방법이 루틴하고, 어느 후보가 성공할지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면, 그중 하나를 시도해서 성공한 것은 뻔하다(obvious to try)는 논리다.

Kubin 요건 (심사관 공격 논리) 비자명성 방어 논리
선택지가 제한적이었다 수많은 후보 중 어느 것이 성공할지 알 수 없었다
성공 가능성이 예측 가능했다 당시 기술 수준에서 예측 불가능했다
실험이 루틴했다 상당한 시행착오와 전문적 판단이 필요했다
결과가 예상 가능했다 Unexpected results가 있었다

예상외 효과 주장의 구체적 요건: Allergan v. Apotex / P&G v. Teva

이 판례들은 unexpected results 방어가 설득력을 가지려면 무엇이 필요한지를 구체화한다.

요소 내용
비교 대상 반드시 가장 가까운 선행기술(closest prior art)과 비교
데이터 주장이 아닌 정량적 비교실험 결과
효과의 질 단순 개선이 아니라 예상 불가능한 수준의 개선
청구범위 대응 청구항 전체 범위에서 효과가 확인될 것
Nexus 효과가 청구발명의 특징적 구성 자체에서 비롯됨

제3부: 소프트웨어 발명 판례

소프트웨어 특허는 화학이나 기계와 전혀 다른 이유로 복잡하다. 두 가지 고유한 구조적 문제가 있다.

  • “컴퓨터로 하면 다 뻔하다”는 공격: 사람이 수작업으로 하던 일을 자동화한 것, 오프라인에서 하던 것을 온라인으로 옮긴 것, 기존 소프트웨어 모듈들을 붙여 놓은 것은 다 뻔하다고 심사관이 주장하기 쉽다.
  • 101 적격성 문제와의 교차: “특허를 받을 수 있는 발명인가(§101)”와 “뻔하지 않은 발명인가(§103)”, 두 관문을 동시에 통과해야 한다. §101을 통과하기 위해 기술적 특징을 강조하면 그 부분이 오히려 §103 공격의 표적이 되는 역설이 생긴다.

전자식으로 만든다고 새로운 게 아니다: Leapfrog v. Fisher-Price

어린이 학습 장치 사건이다. 종이 교재를 가지고 하는 음성 학습 방식을 전자 기기에 구현한 발명이었는데, 법원은 이미 알려진 교육 방법을 기존 전자 부품으로 구현한 것은 자명하다고 봤다.

교훈: “기존에 이런 기능이 있었는데 우리가 이것을 소프트웨어로 만들었다”는 서술은 진보성 공격의 빌미가 된다. 특허를 보호하려면 그 기능을 가능하게 하는 특정한 기술적 구조나 알고리즘이 청구항에 담겨야 한다.

반복하면 뻔하다는 논리: Perfect Web v. InfoSonics

이메일 마케팅 소프트웨어 사건이다. 발송 실패 시 재시도하는 로직을 청구했는데, 법원은 이것이 통상의 기술자에게 상식적인 반복 과정에 불과하다고 봤다.

교훈: 소프트웨어에서 “실패하면 다시 시도하라”, “조건이 충족될 때까지 반복하라”는 논리는 거의 항상 뻔하다는 공격을 받는다. 그 특정한 방식의 반복이나 조건 처리가 왜 단순한 재시도와 다른지를 기술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소프트웨어 특허를 지키기 위한 3단계 실무 포인트

단계 핵심 원칙 구체적 실행
출원 단계 “무엇을”이 아니라 “어떻게”를 청구항에 기능이 아닌 구체적 구조·데이터 처리·알고리즘 단계를 청구항에 포함
OA 대응 단계 조합의 예측 불가능성 주장 각 모듈 결합 시 개별 기능의 단순한 합 이상의 결과가 나옴을 기술적으로 설명
무효 분쟁 단계 개발 당시 기록 활용 왜 기존 방법을 택하지 않고 이 방식을 선택했는지, 다른 방법들이 왜 효과 없었는지의 내부 기록

정리: 세 갈래를 관통하는 하나의 질문

세 분야의 판례를 모두 관통하는 질문은 결국 하나다.

그 발명이 나오기 전에, 그 발명을 알지 못하는 전문가라면 이 길을 택했을 것인가?”

공통 원칙 판례들은 그 질문에 답하는 방법의 형식을 정한다. 화학·바이오·제약 판례들은 분자 수준의 예측 불가능성을 그 질문의 중심에 놓는다. 소프트웨어 판례들은 기능이 아닌 구현의 비자명성을 그 질문에서 찾도록 요구한다.

분야 핵심 판례 방어의 중심
공통 원칙 Graham, KSR, Kahn, Gurley, Ratti, Gordon, Rouffet 거절 논리의 충분성, 결합의 정당성
화학·바이오·제약 Dillon, Takeda, Kubin, Allergan, P&G v. Teva 구조-성질 불확실성, 예상외 효과
소프트웨어 Leapfrog, Perfect Web, Comiskey 기능이 아닌 구현의 비자명성

기업 담당자 입장에서 이 판례들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다.

특허는 출원할 때 이미 어떻게 지킬 것인지를 함께 생각해야 한다. 어떤 분야의 발명이든, 그 발명이 “왜 뻔하지 않은가”에 대한 답을 기술적으로, 그리고 시장에서 증명할 수 있는 형태로 준비해 두는 것이 진보성 방어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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