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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상표 출원·분쟁에서 반드시 알아야 할 핵심 법리

해외 상표를 출원하거나, 타인의 상표와 충돌 가능성을 검토할 때 가장 자주 등장하는 개념이 있습니다.

바로 혼동가능성, 즉 likelihood of confusion입니다.
혼동가능성이란 소비자가 두 상표를 보고 다음과 같이 오인할 가능성을 말합니다.

“두 제품이 같은 회사에서 나온 것 아닌가?”
“서로 계열사나 라이선스 관계가 있는 것 아닌가?”
“기존 브랜드의 새로운 제품 라인 아닌가?”

상표법은 단순히 이름이나 로고 자체를 보호하는 제도가 아닙니다.
그 상표를 통해 소비자가 상품이나 서비스의 출처를 구별할 수 있도록 보호하는 제도입니다. 따라서 상표 분쟁에서 핵심은 결국 일반 소비자가 상품의 출처를 혼동할 위험이 있는지입니다.
특히 유럽연합, 즉 EU 상표법은 혼동가능성 판단에 관하여 오랜 기간 축적된 판례 법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EU 상표 실무는 한국 상표법과 유사한 부분도 많지만, 구조적으로 다른 부분도 분명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EU의 대표적인 혼동가능성 판례들을 중심으로,
한국 상표법과 비교하면서 기업이 실무상 유의해야 할 점을 정리해보겠습니다.

1. EU 상표법의 기본 원칙: 혼동가능성은 “종합적으로” 판단한다

EU 상표법에서 혼동가능성 판단의 출발점은 종합판단입니다.
영어로는 global appreciation이라고 합니다.

이는 상표의 외관, 호칭, 관념, 상품·서비스의 유사성, 선행상표의 식별력, 관련 소비자의 주의력 등을
각각 따로 떼어 기계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관련 요소를 전체적으로 고려한다는 의미입니다.
이 원칙을 확립한 대표적인 판례가 Sabel v Puma 사건입니다.

이 사건에서 문제 된 것은 도형상표였습니다.
한쪽은 뛰어오르는 고양이과 동물 도형을 포함한 상표였고, 다른 한쪽은 유명한 퓨마 도형상표였습니다.
양쪽 모두 고양이과 동물을 연상시키는 도형을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에, 단순히 보면 어느 정도 유사성이 있어 보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럽사법재판소는 단순히 “비슷한 동물 도형이 들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혼동가능성을 인정할 수는 없다고 보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소비자가 상표 전체에서 받는 인상입니다.
또한 상표 안에서 식별력이 강하거나 지배적인 요소가 무엇인지도 고려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즉, EU에서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접근합니다.

첫째, 상표 전체가 소비자에게 어떤 인상을 주는가.
둘째, 그중 소비자의 기억에 강하게 남는 요소가 무엇인가.
셋째, 해당 요소가 상품의 출처를 표시하는 힘, 즉 식별력을 가지고 있는가.
넷째, 그 결과 소비자가 두 상품의 출처를 혼동할 가능성이 있는가.

이러한 방식은 한국 상표법의 판단 방식과도 상당히 닮아 있습니다.
한국 대법원도 상표의 유사 여부를 판단할 때 외관, 호칭, 관념을 전체적·객관적·이격적으로 관찰합니다.
여기서 “이격적 관찰”이란 두 상표를 나란히 놓고 세밀하게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거래 상황에서 소비자가 시간적 간격을 두고 기억에 의존해 상표를 접하는 방식을 고려한다는 의미입니다.
EU의 평균소비자 개념과 한국의 일반 수요자·거래자 기준은 이 점에서 서로 통합니다.

2. EU와 한국의 가장 중요한 차이: 상호보완 원칙

EU와 한국의 혼동가능성 판단에서 가장 중요한 차이는 상호보완 원칙입니다.
EU에서는 상표 유사성과 상품·서비스 유사성이 서로 영향을 주는 요소로 판단됩니다. 이를 interdependence principle이라고 합니다.

이 원칙을 명확히 한 대표적인 판례가 Canon v MGM 사건입니다.
이 사건에서 유럽사법재판소는 혼동가능성을 판단할 때
상표의 유사성과 상품의 유사성을 서로 분리된 독립 요소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고 판시했습니다.
즉, 상표 사이의 유사성이 다소 낮더라도 상품이 동일하거나 매우 유사하면 혼동가능성이 인정될 수 있고,
반대로 상품의 유사성이 다소 낮더라도 상표가 매우 유사하면 혼동가능성이 인정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어떤 기업이 “LUMINA”라는 상표를 화장품에 사용하고 있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이후 다른 기업이 “LUMINO”라는 상표를 같은 화장품류에 출원했다면, 두 상표가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더라도 상품이 동일하기 때문에 EU에서는 혼동가능성이 인정될 가능성이 커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두 상표가 거의 동일하다면, 상품이 완전히 같지는 않더라도 서로 관련 있는 분야라면 혼동가능성이 문제 될 수 있습니다.

즉 EU에서는 다음과 같은 사고방식이 작동합니다.
상품이 매우 가까우면 상표 차이가 어느 정도 있어도 위험할 수 있다.
상표가 매우 가까우면 상품 차이가 어느 정도 있어도 위험할 수 있다.
이것이 EU 혼동가능성 판단의 핵심 엔진입니다.

반면 한국 상표법 제34조 제1항 제7호는 구조가 다릅니다.
한국에서는 원칙적으로 다음 두 요건을 각각 충족해야 합니다.

첫째, 선등록상표와 출원상표가 동일·유사할 것.
둘째, 지정상품도 동일·유사할 것.

즉, 한국에서는 상표 유사성과 상품 유사성이 각각 독립적인 요건으로 취급됩니다.
상품이 동일하다는 이유만으로 상표 유사성의 문턱이 낮아진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반대로 상표가 상당히 비슷하더라도 상품이 유사하지 않으면 제34조 제1항 제7호에 따른 거절 또는 무효 사유가 성립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한국에서도 저명상표 혼동, 수요자 기만, 부정한 목적의 모방상표 등 다른 조항을 통해 유사한 효과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34조 제1항 제7호만 놓고 보면 EU식 상호보완 원칙이 정면으로 적용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 부분은 해외 상표 전략을 세울 때 매우 중요합니다.

EU에서는 “상품이 같으니 상표가 조금 달라도 위험하다”는 논리가 강하게 작동할 수 있습니다.
반면 한국에서는 먼저 상표 자체가 유사한지 여부가 독립적으로 검토됩니다.

3. 평균소비자의 기억은 완전하지 않다

EU 상표법에서 또 하나 중요한 개념은 평균소비자의 불완전한 기억입니다.

대표적인 판례가 Lloyd Schuhfabrik Meyer 사건입니다.
이 사건에서 유럽사법재판소는 평균소비자를 “합리적으로 정보를 가지고 있고, 합리적으로 주의 깊고 신중한 사람”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평균소비자는 두 상표를 항상 나란히 놓고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보통은 과거에 본 상표에 대한 불완전한 기억에 의존한다고 보았습니다.
이 점은 상표 유사 판단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실제 소비자는 상표를 분석하듯이 보지 않습니다.
철자를 하나하나 비교하지도 않습니다.
상표의 구성요소를 법률가처럼 분해하지도 않습니다.

소비자는 보통 전체적인 인상, 발음, 기억에 남는 부분, 익숙한 느낌에 따라 상품을 선택합니다.
따라서 상표의 외관이 다소 다르더라도 호칭이 비슷하면 혼동가능성이 인정될 수 있고, 반대로 철자가 일부 유사하더라도 전체 인상이나 의미가 뚜렷하게 다르면 혼동가능성이 낮아질 수 있습니다.
한국 실무에서도 이와 유사하게 호칭 유사성이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집니다.
특히 일반 소비자가 구두로 상품을 주문하거나 추천받는 분야에서는 호칭 유사성이 혼동가능성 판단에서 큰 비중을 차지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의약품, 건강기능식품, 화장품, 식품, 생활용품 분야에서는 소비자가 상표명을 말로 전달하거나 기억에 의존해 구매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경우 철자가 약간 다르더라도 발음이 비슷하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해외 상표 검토에서는 단순히 로고 모양이나 철자만 볼 것이 아니라, 실제 소비자가 그 상표를 어떻게 읽고 기억할지를 함께 검토해야 합니다.

4. 결합상표 판단: 전체를 보되, 핵심 부분을 놓치면 안 된다

현실의 상표는 단순한 한 단어로만 구성되는 경우보다 여러 요소가 결합된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형태입니다.

회사명 + 제품명
브랜드명 + 기술 설명어
도형 + 문자
영문 + 한글
하우스마크 + 서브브랜드

이러한 상표를 결합상표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EU에서는 결합상표를 판단할 때 원칙적으로 상표 전체를 기준으로 비교합니다.
그러나 전체 중에서도 소비자에게 강한 인상을 주는 요소, 즉 지배적 요소나 독립적으로 식별력을 갖는 요소가 있다면 그 부분을 중요하게 봅니다.

대표적인 판례가 Medion 사건입니다.
이 사건에서 선행상표는 “LIFE”였고, 후행상표는 “THOMSON LIFE”였습니다. “THOMSON”은 유명한 회사명이고, “LIFE”는 그 뒤에 붙어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유명한 회사명인 THOMSON이 앞에 있으므로 소비자가 혼동하지 않을 것 같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유럽사법재판소는 다르게 보았습니다.
후행상표 안에 선행상표인 “LIFE”가 그대로 포함되어 있고, 그 부분이 독립적인 식별력을 유지한다면 혼동가능성이 인정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이 판례의 실무상 의미는 매우 큽니다.
타인의 상표 앞에 자기 회사명을 붙였다고 해서 항상 안전한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ABC + 타인의 등록상표” 형태로 상표를 만들 경우, “ABC”가 자사 하우스마크라고 하더라도 후반부에 포함된 타인의 상표가 독립적으로 인식된다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법리가 무제한으로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Bimbo 사건에서는 Medion 법리의 한계가 설명되었습니다.

유럽사법재판소는 특정 구성요소가 독립적 식별력을 갖는다고 해서 자동으로 혼동가능성이 인정되는 것은 아니며, 여전히 상표 전체의 인상과 모든 관련 요소를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또한 SkinIdent 사건에서는 선행상표가 후행상표에 그대로 포함된 것이 아니라 변형되어 포함된 경우에는 Medion 법리가 쉽게 적용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예를 들어 하이픈이 추가되거나, 어미가 바뀌거나, 전체적으로 다른 의미와 인상을 형성하는 경우에는 독립적 식별력 주장이 약해질 수 있습니다.

한국의 법리도 이와 매우 유사합니다.
한국에서는 결합상표에 관하여 전체관찰 원칙과 요부관찰 법리가 함께 작동합니다.
원칙적으로는 상표 전체를 보아야 하지만, 그중 일반 수요자에게 강한 인상을 주거나 기억·연상을 일으키는 부분이 있으면 그 부분을 중심으로 유사 여부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다만 한국 대법원은 식별력이 없거나 약한 부분은 요부가 될 수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상품의 성질, 용도, 효능, 원재료 등을 설명하는 부분은 보통 상표의 핵심 부분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이 점에서 EU의 결합상표 법리와 한국의 요부관찰 법리는 상당히 가까운 방향으로 수렴하고 있습니다.

5. 식별력이 약한 부분은 보호범위가 좁다

상표 분쟁에서 자주 발생하는 오해가 있습니다.

“두 상표에 같은 단어가 들어가니 무조건 위험하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공통으로 들어간 부분이 얼마나 식별력이 있는지가 훨씬 중요합니다.
식별력이란 소비자가 그 표시를 보고 특정 기업의 상품이나 서비스를 떠올릴 수 있는 힘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특정 화장품 상표에 “SKIN”, “BEAUTY”, “DERMA”, “CARE” 같은 단어가 들어가 있다면,
이러한 단어들은 화장품 분야에서 흔히 사용되는 표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경우 해당 부분은 식별력이 약하다고 평가될 수 있습니다.

EU에서는 Primart 사건과 EUIPO CP5 공통실무에서 이 점이 명확히 설명됩니다.
선행상표와 후행상표가 약한 식별력을 가진 요소에서만 일치하는 경우, 일반적으로 혼동가능성이 쉽게 인정되지 않습니다.
물론 약한 상표도 보호를 전혀 받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등록상표인 이상 일정한 보호는 받습니다. 다만 보호범위가 좁아집니다. 따라서 다른 식별력 있는 요소가 충분히 다르면 혼동가능성이 부정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같은 법리가 작동합니다.

한국 대법원은 다음과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식별력이 없거나 미약한 부분은 요부가 될 수 없다.
공통요소가 다수의 상표에 이미 포함되어 등록되어 있다면 그 요소의 식별력은 약하게 평가될 수 있다.
따라서 약한 공통요소만 같고, 나머지 식별력 있는 부분이 다르면 전체적으로 비유사로 판단될 수 있다.

이 법리는 실무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상표 조사를 할 때 단순히 같은 글자가 포함되어 있는지를 기준으로 위험 여부를 판단하면 안 됩니다.
그 글자가 해당 업계에서 흔히 쓰이는지, 상품의 성질을 설명하는지, 이미 여러 권리자가 사용하고 있는지, 소비자가 특정 회사의 표시로 인식할 정도인지까지 검토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BIO”, “SMART”, “GREEN”, “PLUS”, “CARE”, “LAB”, “TECH” 같은 표현은 업종에 따라 식별력이 약하게 평가될 수 있습니다.
반면 같은 단어라도 특정 분야에서는 독창적이거나 강한 출처표시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결국 식별력 판단은 추상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상품·서비스 분야와 관련 소비자의 인식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6. 의미가 명확히 다르면 외관·호칭 유사성을 줄일 수 있다

상표의 외관이나 발음이 어느 정도 비슷하더라도, 관념이 뚜렷하게 다르면 혼동가능성이 낮아질 수 있습니다.
이를 EU에서는 흔히 개념적 상쇄, 즉 conceptual counteraction이라고 설명합니다.

대표적인 판례가 Picasso/Picaro 사건입니다.
이 사건에서 선행상표는 “PICASSO”였고, 후행상표는 “PICARO”였습니다. 두 단어는 철자와 발음에서 어느 정도 유사성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PICASSO”는 일반 소비자에게 유명 화가 피카소를 즉시 떠올리게 하는 매우 강한 관념을 가진 단어였습니다.

유럽사법재판소는 이러한 명확한 관념 차이가 시각적·청각적 유사성을 상쇄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다만 개념적 상쇄가 항상 인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Equivalenza 사건에서는 개념적 상쇄가 예외적으로 인정되는 법리임이 강조되었습니다.
즉, 어느 한 상표가 관련 소비자가 즉시 이해할 수 있는 명확하고 특정한 의미를 가져야 합니다. 애매하거나 추상적인 의미 차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접근이 가능합니다.
한국 상표법에서는 외관, 호칭, 관념 중 어느 하나가 유사하면 원칙적으로 상표가 유사하다고 볼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아 출처혼동의 우려가 없으면 비유사로 판단될 수 있습니다.
특히 관념이 명확히 다르면 외관이나 호칭의 일부 유사성이 약화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두 상표의 발음이 어느 정도 비슷하더라도, 하나는 유명한 역사적 인물이나 지명을 즉시 떠올리게 하고,
다른 하나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다면 소비자의 혼동 가능성이 낮다고 볼 여지가 있습니다.

다만 이 주장도 신중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관념 차이가 분명하고, 관련 소비자가 그 의미를 즉시 인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 특히 외국어 상표의 경우 한국 소비자가 그 의미를 실제로 이해할 수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7. 상표 패밀리: EU에서는 가능하지만, 한국에서는 별도 법리로 보기 어렵다

EU 상표법에는 상표 패밀리, 또는 시리즈 상표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이는 한 기업이 공통된 접두어, 접미어 또는 특정 구성요소를 반복적으로 사용하여 여러 상표를 운영하는 경우, 소비자가 새로운 상표도 그 시리즈의 일부라고 오인할 수 있다는 법리입니다.

예를 들어 한 기업이 오랫동안 “UNI-”로 시작하는 여러 금융상품 브랜드를 사용해왔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이후 제3자가 “UNI-”로 시작하는 유사한 상표를 사용하면, 소비자는 그것도 기존 기업의 브랜드 시리즈 중 하나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EU의 대표적인 판례로는 Bainbridge 사건과 Union Investment 사건이 있습니다.

다만 EU에서 상표 패밀리 보호를 주장하려면 단순히 여러 상표를 등록해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실제로 시장에서 충분한 수의 시리즈 상표가 사용되고 있어야 합니다. 소비자가 그 공통요소를 보고 특정 기업의 브랜드군을 떠올릴 정도의 사용 증거가 필요합니다.

즉, 서류상 등록만으로는 부족하고, 시장에서의 실제 사용과 소비자 인식이 중요합니다.
한국은 EU와 달리 독립된 “상표 패밀리” 법리를 명확하게 인정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한국에서는 특정 기업이 비슷한 상표를 여러 개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곧바로 혼동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한국에서는 동일하거나 유사한 공통요소가 여러 권리자에 의해 다수 등록되어 있으면, 그 공통요소의 식별력이 약하다고 평가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만 한국에서도 기능적으로 유사한 효과가 발생할 수는 있습니다.
특정 공통요소를 한 기업이 장기간 집중적으로 사용하여, 소비자들이 그 요소를 특정 기업의 출처표시로 인식하게 되었다면 그 부분이 강한 식별력을 취득할 수 있습니다.
즉, 한국에서는 “상표 패밀리”라는 별도의 형식보다는, 사용에 의해 공통요소가 얼마나 강한 식별력을 갖게 되었는지가 핵심입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이 차이를 잘 이해해야 합니다.
EU에서는 브랜드 시리즈 전략을 구사하려면 각 시리즈 상표의 실제 사용 증거를 체계적으로 축적해야 합니다.
한국에서는 공통요소 자체가 소비자에게 강하게 인식될 수 있도록 마케팅과 사용을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8. 지정상품의 범위는 분쟁 결과를 좌우할 수 있다

상표 분쟁에서는 상표 자체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상표가 사용되거나 출원된 상품·서비스의 범위도 매우 중요합니다.

EU의 TVR 관련 사건들은 이 점을 잘 보여줍니다.
같은 자동차 관련 상표라도 지정상품이 “스포츠카 및 그 부품”처럼 좁게 기재되어 있는지, 아니면 “차량”처럼 넓게 기재되어 있는지에 따라 상품 유사성 판단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상표가 동일하거나 유사하더라도 지정상품이 실제로 얼마나 가까운지에 따라 혼동가능성의 결론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 상표 실무에서는 상품의 품질, 형상, 용도, 생산·판매 부문, 수요자 범위, 거래 실정 등을 종합해 상품 유사 여부를 판단합니다.
니스 분류상 같은 류에 속한다고 해서 항상 유사한 상품인 것은 아니고, 다른 류에 속한다고 해서 항상 비유사한 것도 아닙니다.

따라서 출원 단계에서 지정상품을 어떻게 설계하느냐는 매우 중요한 전략적 문제입니다.
너무 좁게 지정하면 실제 사업 확장 시 보호범위가 부족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너무 넓게 지정하면 해외에서는 사용 의사 없는 과도한 출원으로 문제 될 수 있습니다.

특히 EU에서는 SkyKick 사건 이후 사용 의사 없이 지나치게 넓은 상품·서비스를 지정하는 경우 악의 출원 문제가 제기될 수 있습니다.
물론 단순히 넓게 지정했다는 이유만으로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 사업과 무관한 범위를 전략적으로 과도하게 선점하려는 의도가 인정되면 리스크가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해외 상표 출원에서는 다음과 같은 기준이 필요합니다.

현재 사용 중인 상품·서비스
가까운 장래에 사용할 가능성이 높은 상품·서비스
브랜드 확장 가능성이 있는 핵심 영역
불필요하게 넓어 보일 수 있는 영역의 배제

즉, “넓게 잡으면 좋다”는 단순한 접근보다, 실제 사업계획과 분쟁 가능성을 고려한 정밀한 지정상품 설계가 필요합니다.

9. 단체표장·증명표장도 특별히 강하게 보호되는 것은 아니다

EU 판례 중에는 HALLOUMI 관련 사건들이 있습니다.
HALLOUMI는 키프로스의 유명한 치즈 명칭과 관련된 단체표장·증명표장 분쟁에서 자주 등장했습니다.
이 사건들에서 EU 법원은 단체표장이나 증명표장도 기본적으로 일반 상표와 같은 혼동가능성 기준에 따라 판단된다고 보았습니다.
다만 증명표장의 경우 소비자가 “이 상품이 해당 증명기관에 의해 인증되었다고 오인할 위험”이 있는지를 중심으로 볼 수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단체표장이나 증명표장이라고 해서 자동으로 강한 보호를 받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표시가 지리적 명칭이거나 상품의 종류를 설명하는 성격이 강하면 식별력이 약하게 평가될 수 있습니다.
한국 상표법도 단체표장, 지리적 표시 단체표장, 증명표장 등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한국에는 EU의 HALLOUMI 사건과 정면으로 대응되는 대법원 판례가 충분히 축적되어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실무적으로는 단체표장이나 증명표장을 출원·관리할 때 다음 사항이 중요합니다.

그 표시가 단순한 산지나 품질 설명에 그치지 않는지
소비자가 특정 단체나 인증 주체와 연결해 인식하는지
사용 기준과 관리 규정이 명확한지
제3자의 유사 표시 사용을 어느 범위까지 제한할 수 있는지

특히 지역명, 특산품 명칭, 품질 인증 명칭과 관련된 상표는 일반 브랜드 상표보다 식별력 판단이 더 복잡할 수 있습니다.

10. 혼동가능성과 저명상표 희석은 구분해야 한다

상표 실무에서 반드시 구분해야 할 개념이 있습니다.
바로 혼동가능성과 저명상표의 희석입니다.
혼동가능성은 소비자가 상품이나 서비스의 출처를 오인하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소비자가 A 상품을 보고 B 회사의 제품이라고 착각하는 상황입니다.

반면 희석은 소비자가 출처를 혼동하지 않더라도, 유명 상표가 가진 강한 식별력이나 명성이 약화되는 경우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매우 유명한 상표가 전혀 다른 업종에서 사용될 때, 소비자가 실제로 출처를 혼동하지는 않더라도 기존 유명 상표의 독창성, 명성, 고유한 이미지가 손상될 수 있습니다.

EU에서는 이를 혼동가능성 트랙과 명성·희석 트랙으로 명확히 구분합니다.
혼동가능성 트랙에서는 상품·서비스의 동일·유사성과 출처혼동 가능성이 핵심입니다.
명성·희석 트랙에서는 상품이 유사하지 않더라도, 선행상표가 명성을 가지고 있고, 후행상표 사용으로 인해 부당한 이익을 얻거나 식별력·명성이 손상될 위험이 있는지가 문제 됩니다.

한국에서도 이 구분이 중요합니다.
한국 상표법 제34조 제1항 제11호 후단은 저명상표의 식별력 또는 명성을 손상시킬 염려가 있는 상표를 등록받을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특히 2023년 대법원의 레고켐 사건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완구류로 유명한 “LEGO/레고” 상표와 의약품 분야의 “LEGOCHEMPHARMA” 상표 사이에서, 출처혼동과 별개로 저명상표의 식별력 손상 가능성을 인정했습니다.
즉, 소비자가 의약품 회사를 실제 LEGO 회사와 혼동하지 않더라도, “LEGO”라는 강한 저명상표의 단일한 출처표시 기능이 약화될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이 판례는 한국에서도 희석 법리가 실제로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다음과 같은 전략적 구분이 필요합니다.

상대방 상표가 우리 상표와 상품 분야도 유사하고 소비자 혼동이 문제 되는 경우에는 혼동가능성을 주장해야 합니다.
상대방 상표가 전혀 다른 분야에서 사용되지만 우리 상표가 매우 유명하고, 그 명성이나 식별력이 손상될 위험이 있다면 희석 법리를 검토해야 합니다.

두 주장은 비슷해 보이지만 요건과 입증 방향이 다릅니다.
따라서 상표 분쟁에서는 처음부터 어떤 트랙으로 주장할 것인지 전략을 세워야 합니다.

11. EU와 한국의 공통점과 차이점 정리

EU와 한국 상표법은 모두 소비자의 오인·혼동을 방지한다는 점에서 공통된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다음과 같은 부분에서는 매우 유사합니다.

결합상표는 원칙적으로 전체를 보되, 핵심적인 식별 요소를 중요하게 본다.
식별력이 약한 부분은 보호범위가 좁다.
외관, 호칭, 관념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소비자의 실제 인식과 거래 실정을 중요하게 본다.
저명상표의 경우 일반 상표보다 넓은 보호가 가능하다.

그러나 중요한 차이도 있습니다.
가장 큰 차이는 EU의 상호보완 원칙입니다.
EU에서는 상표 유사성과 상품 유사성이 서로 보완될 수 있습니다. 상품이 동일하면 상표 유사성이 다소 낮아도 혼동가능성이 인정될 수 있고, 상표가 매우 유사하면 상품 유사성이 다소 낮아도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반면 한국 상표법 제34조 제1항 제7호에서는 상표 유사성과 상품 유사성을 각각 독립적인 요건으로 보는 경향이 강합니다.
또한 EU에서는 상표 패밀리 법리가 비교적 명확하게 발전해 있지만, 한국에서는 이를 독립된 법리로 인정하기보다는 사용에 의한 식별력 강화나 요부관찰 법리 안에서 해결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이러한 차이는 해외 상표 출원, 이의신청, 무효심판, 침해검토에서 실제 결과 차이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12. 기업을 위한 실무 전략

1) 상표 후보를 정할 때 공통요소의 식별력을 먼저 보아야 한다

상표 조사에서 가장 먼저 볼 것은 단순한 동일 글자 포함 여부가 아닙니다.
공통된 부분이 강한 식별력을 가지는지, 약한 표현인지부터 보아야 합니다.
공통요소가 기술적 표현이거나 업계에서 흔한 표현이라면, 그 부분만으로 혼동가능성이 인정될 가능성은 낮아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짧은 단어라도 독창성이 강하고 선행상표의 핵심으로 인식된다면 위험할 수 있습니다.

2) 타인의 상표에 자사명을 붙이는 방식은 신중해야 한다

“우리 회사 이름을 앞에 붙였으니 괜찮다”는 생각은 위험할 수 있습니다.
EU의 Medion 법리에 따르면, 타인의 상표가 후행 결합상표 안에서 독립적으로 식별력을 유지하면 혼동가능성이 인정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그 부분이 요부로 인식되면 유사 판단에서 불리할 수 있습니다.
특히 “하우스마크 + 타인의 등록상표” 구조는 반드시 사전 검토가 필요합니다.

3) 해외 출원 시 지정상품을 전략적으로 설계해야 한다

지정상품은 너무 좁아도 문제이고, 너무 넓어도 문제입니다.
좁으면 보호범위가 부족하고, 넓으면 일부 국가에서는 사용 의사 없는 과도한 출원으로 공격받을 수 있습니다.
EU에서는 특히 실제 사업계획과 무관한 과도한 지정이 악의 출원 문제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실제 사업영역, 확장 가능성, 경쟁사의 사용 가능성, 분쟁 가능성을 함께 고려해 지정상품을 설계해야 합니다.

4) 브랜드 시리즈를 운영한다면 사용 증거를 축적해야 한다

EU에서 상표 패밀리 보호를 주장하려면 실제 사용 증거가 중요합니다. 여러 상표를 등록만 해두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광고자료, 판매자료, 웹사이트 사용내역, 카탈로그, 소비자 인식 자료 등을 체계적으로 축적해야 합니다.
한국에서도 공통요소가 특정 기업의 출처표시로 인식되려면 장기간의 일관된 사용과 마케팅이 중요합니다.

5) 유명 브랜드는 희석 가능성까지 고려해야 한다

유명 상표를 보유한 기업이라면 단순한 혼동가능성뿐 아니라 희석 가능성도 검토해야 합니다.
상대방이 전혀 다른 상품에 상표를 사용하더라도, 그 사용이 자사 저명상표의 독창성이나 명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면 희석 주장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특히 한국에서도 레고켐 판결 이후 저명상표 희석 주장은 더 현실적인 전략이 되었습니다.

결론: EU 상표 전략은 한국식 판단만으로는 부족하다

EU와 한국은 모두 상표의 출처표시 기능을 보호하고, 소비자의 오인·혼동을 방지한다는 공통된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판단 구조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EU는 혼동가능성을 판단할 때 모든 요소를 종합적으로 저울질합니다.
특히 상표 유사성과 상품 유사성 사이의 상호보완 원칙이 강하게 작동합니다.
따라서 상품이 동일하거나 매우 유사한 경우, 상표 사이의 차이가 어느 정도 있더라도 혼동가능성이 문제 될 수 있습니다.

반면 한국은 제34조 제1항 제7호에서 상표 유사성과 상품 유사성을 각각 독립적인 요건으로 보는 경향이 강합니다.

이 점에서 EU와 한국의 판단 방식은 분명히 다릅니다.
다만 결합상표, 요부 판단, 약한 식별력 요소, 개념적 차이에 따른 혼동 감소, 저명상표 보호 등에서는 양 법제가 상당히 유사한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유럽 시장에 진출하려는 기업은 단순히 한국에서 등록 가능하다는 이유만으로 EU에서도 안전하다고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EU의 종합판단 방식, 상호보완 원칙, 상표 패밀리 법리, 지정상품 해석, 희석 법리를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상표는 단순한 이름이 아니라 기업의 신뢰와 시장에서의 위치를 축적한 자산입니다.
특히 해외 시장에서는 상표 하나가 진입 전략, 유통 계약, 투자 유치, 분쟁 대응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해외 상표 출원 전에는 다음 네 가지를 반드시 점검해야 합니다.

상표 자체가 선행상표와 얼마나 유사한지
공통된 부분이 강한 식별력을 가지는지
지정상품·서비스가 실제로 얼마나 가까운지
해당 국가의 상표법리가 한국과 어떻게 다른지

이러한 검토를 거쳐야만 해외 진출 과정에서 불필요한 거절, 이의신청, 무효심판, 침해분쟁을 줄일 수 있습니다.
EU 상표법은 판례 중심으로 발전해온 영역입니다. 따라서 단순히 조문만 확인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주요 판례의 흐름을 이해하고, 한국 상표 실무와의 차이를 파악한 뒤, 각 기업의 브랜드 전략에 맞게 출원과 분쟁 대응 방향을 설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신무연 변리사
기율특허법인 대표
WTR 1000, IAM Patent 1000, IP Stars 선정 변리사
《특허는 전략이다》, 《상표 전쟁》, 《특허로 말하라》 저자
10년 이상 미국·유럽·중국 등 국제 특허 및 상표 전략 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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