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상표 출원·분쟁에서 반드시 알아야 할 핵심 법리
미국에 상표를 출원하거나, 미국 시장에서 타인의 상표와 충돌 가능성을 검토할 때 한국 기업들이 가장 자주 착각하는 지점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등록됐으니 미국에서도 비슷하게 흘러가겠지.”
이 가정은 위험합니다.
미국 상표법은 혼동가능성(likelihood of confusion)을 판단하는 틀 자체가 한국과 다르게 짜여 있고, 그 틀의 차이가 실제 출원 전략, 거절 대응, 분쟁 결과에 그대로 영향을 미칩니다.
앞선 글에서는 EU 상표법의 혼동가능성 판단 기준을 한국 상표법과 비교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같은 방식으로, 미국 상표법의 대표적인 법리와 판례를 중심으로 한국 상표법과 비교하면서 기업이 실무상 유의해야 할 점을 정리해보겠습니다.
1. 미국 상표법의 기본 원칙 : 혼동가능성은 다요소로 판단한다
미국 연방상표법(Lanham Act)은 혼동가능성을 두 국면에서 규율합니다.
하나는 등록 국면입니다.
Lanham Act 제2조(d)(15 U.S.C. §1052(d))는 출원상표가 타인의 선등록상표 또는 선사용상표와 혼동, 오인, 기만을 일으킬 우려가 있으면 등록을 거절하도록 규정합니다. 특허상표청(USPTO) 심사관의 거절, 상표심판원(TTAB)의 이의신청·등록취소 절차에서 적용됩니다.
다른 하나는 침해 국면입니다.
제32조(15 U.S.C. §1114, 등록상표 침해)와 제43조(a)(15 U.S.C. §1125(a), 미등록상표나 트레이드드레스를 포함한 출처 표시 위반)는 상업상 사용이 혼동가능성을 야기하면 침해로 봅니다.
여기서 핵심은 “상품 자체가 같은가”가 아니라 “소비자가 상품의 출처, 후원, 제휴 관계를 오인할 우려가 있는가”입니다.
이 점은 한국 상표법이 말하는 “상품 출처의 오인·혼동”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미국은 이 혼동가능성을 판단할 때 13가지 다요소 테스트를 사용합니다.
1973년 미국 관세특허항소법원(CCPA)의 In re E.I. du Pont de Nemours & Co.판결에서 확립된 이른바 ‘DuPont 요소’입니다.
이 사건에서 듀폰은 자동차용 광택·세정제에 ‘RALLY’ 상표를 출원했는데, 이미 일반 세정제 분야에 등록되어 있던 Horizon Industries의 ‘RALLY’ 상표와 충돌한다는 이유로 거절당했습니다.
그런데 양 당사자는 자동차 시장(듀폰)과 일반 세정 시장(Horizon)으로 거래영역을 나누기로 합의했고, 법원은 이 합의를 근거로 결국 거절을 뒤집었습니다.
표장이 완전히 동일하더라도, 시장을 실제로 어떻게 나누어 쓰느냐에 따라 혼동가능성의 결론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판례입니다. 이 사건은 뒤에서 다룰 ‘공존동의’ 논의와 그대로 연결됩니다.
DuPont 판결이 확립한 13개 요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 상표 전체의 외관·호칭·관념·상업적 인상의 유사성
② 지정상품·서비스의 유사성 및 그 성질
③ 확립되어 있고 향후 지속될 거래경로의 중첩성
④ 판매 조건과 구매자의 주의 정도(충동구매 vs. 신중한 구매)
⑤ 선행상표가 취득한 저명성
⑥ 유사 상품에 사용되는 유사 상표의 수와 성질
⑦ 실제 혼동의 성질과 정도
⑧ 실제 혼동 없이 병존해 온 기간과 조건
⑨ 상표가 사용되는 상품의 다양성(하우스마크, 상표군 등)
⑩ 출원인과 선행 권리자 사이의 시장 인터페이스(동의서, 병존약정 등)
⑪ 출원인이 타인의 사용을 배제할 수 있는 권리의 범위
⑫ 잠재적 혼동의 정도
⑬ 사용의 효과를 뒷받침하는 그 밖의 사실
법원은 이 판결에서 “모든 사건에 기계적으로 적용되는 리트머스 규칙은 없다”고 밝혔습니다. 사건에 따라 특정 요소 하나가 다른 요소를 압도할 수도 있습니다.
실무적으로는 ①번(상표 유사)과 ②번(상품 관련성)이 거의 모든 사건에서 결정적 비중을 차지합니다.
이 13개 요소는 USPTO 심사와 TTAB, 그리고 등록 관련 항소를 전담하는 연방순회항소법원(CAFC)을 지배합니다. 반면 침해소송으로 넘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제2연방항소법원은 8개의 ‘Polaroid 요소’를, 제9연방항소법원은 8개의 ‘Sleekcraft 요소’를 사용합니다. 두 테스트 모두 상표의 물리적 형태 외에 피고의 고의성, 피고 제품의 품질, 원고가 피고 시장으로 사업을 확장할 가능성(‘bridging the gap’) 등 경쟁관계의 실질을 강하게 반영합니다.
왜 미국은 단일한 통일 기준이 없을까요.
미국은 연방항소법원이 13개 순회로 나뉘어 있고, 연방대법원이 혼동가능성 다요소 테스트를 통일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각 순회가 독자적인 판례법을 쌓아왔습니다. 다만 등록 관련 항소는 CAFC로 집중되기 때문에, 적어도 ‘등록 가능 여부’에 관한 한 DuPont 요소가 사실상 전국 통일 기준으로 기능합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심사 단계에서는 DuPont, 침해소송 단계에서는 관할 순회법원의 테스트”라는 이원 구조를 기억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2. 미국과 한국의 가장 중요한 차이 : 슬라이딩 스케일 vs 독립 요건
EU 편에서 설명한 상호보완 원칙(interdependence principle)을 기억하실 겁니다.
EU는 상표 유사성과 상품 유사성을 서로 영향을 주는 관계로 보아, 한쪽이 강하면 다른 쪽이 다소 약해도 혼동가능성을 인정합니다.
미국도 구조적으로 같은 길을 갑니다.
DuPont 요소 체계에서 ①번(상표 유사)과 ②번(상품 관련성)은 독립적으로 채점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저울 위에서 서로를 밀고 당기는 관계로 작동합니다.
실무에서는 이를 흔히 ‘슬라이딩 스케일(sliding scale)’이라고 부릅니다. 상표가 동일하거나 거의 동일할수록, 혼동을 인정하기 위해 요구되는 상품 관련성의 정도는 낮아집니다.
반대로 상품이 동일하다면, 상표 사이에 어느 정도 차이가 있어도 혼동이 문제 될 수 있습니다.
한국 상표법 제34조 제1항 제7호는 다릅니다. 이 조항은 다음 두 요건을 각각 독립적으로 충족해야 합니다.
첫째, 선등록상표와 출원상표가 동일·유사할 것.
둘째, 지정상품도 동일·유사할 것.
상표가 아무리 비슷해도 상품이 비유사하면 제7호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유명한 예로, ‘태평양’ 화장품과 ‘태평양’ 건설처럼 상표는 동일해도 업종이 전혀 다르면 이 조항만으로는 저지할 수 없습니다.
물론 한국에도 저명상표 희석, 수요자 기만, 부정한 목적의 모방상표 등 다른 조항으로 유사한 효과를 낼 수 있는 길은 있습니다.
하지만 제7호라는 핵심 조문만 놓고 보면, 미국·EU식 상호보완 원칙이 정면으로 작동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 차이는 실무에서 다음과 같은 결과로 이어집니다.
미국에서는 “상품이 조금 다르니 안전하다”는 판단이 위험할 수 있습니다. 상표가 매우 유사하다면 상품 관련성 요건이 낮아지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는 먼저 상표 자체의 유사 여부가 독립적으로 검토되고, 상품이 비유사하면 이 조문의 적용 자체가 배제됩니다.
해외 상표 전략을 세울 때 이 구조적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한국에서는 문제없다고 판단한 상표가 미국에서는 거절당하거나, 반대로 미국에서는 통과된 논리를 한국 심사에 그대로 적용했다가 예상치 못한 결과를 맞을 수 있습니다.
3. 표장 자체의 대비 : 요부관찰 vs 분리관찰 금지
한국 상표 실무에서 두 표장을 대조하는 대원칙은 객관적, 전체적, 이격적 관찰입니다. 그러나 실제 심사를 지배하는 핵심 도구는 결합상표의 특정 부분만 떼어 비교하는 ‘요부관찰’입니다.
한국 대법원은 상표 중 식별력이 강하고 소비자의 이목을 끄는 요부가 있다면, 그 요부만을 추출해 비교하는 것이 거래 현실에 부합한다고 판시해 왔습니다.
그래서 결합상표에 ‘주식회사’, ‘코리아’ 같은 식별력 없는 부분이 붙어 있어도, 심사관은 이를 제외한 요부만을 대조해 거절이유를 통지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미국은 반대 방향에서 접근합니다.
미국 판례는 ‘분리관찰 금지의 원칙(anti-dissection rule)’을 대전제로 삼습니다.
소비자는 상표를 마주할 때 구성요소를 인위적으로 분해해서 분석하지 않고, 상표 전체가 자아내는 단일한 상업적 인상만을 불완전한 기억 속에 담아둔다는 것입니다.
In re National Data Corp.(753 F.2d 1056 (Fed. Cir. 1985)) 판결은 이 원칙을 명확히 하면서도, “합리적 이유가 있다면 상표의 특정 부분에 더 많거나 적은 비중을 두는 것 자체는 부적절하지 않다”고 덧붙였습니다.
다만 그 가중치 부여는 어디까지나 최종적으로 ‘상표 전체가 주는 인상’을 가다듬기 위한 종속적 절차일 뿐, 한국식으로 요부만 떼어내 그것만으로 결론을 내리는 방식과는 결이 다릅니다.
심사 과정에서 특정 단어를 disclaimer(권리불요구) 처리했다고 해도, 일반 소비자는 그 사실을 알 수 없으므로 혼동가능성 판단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점도 함께 확인된 법리입니다.
또한 한국은 외관, 호칭, 관념 중 어느 하나만 극히 유사해도 원칙적으로 유사 상표로 분류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미국은 이 세 요소를 개별 점수로 산출하지 않고 슬라이딩 스케일 방식으로 누적 계량합니다.
특히 한국 실무는 호칭(발음) 유사성에 상당한 비중을 두는 경향이 있어, 외관이 다소 달라도 발음이 비슷하면 유사로 판단되는 사례가 많습니다.
발음이나 외관이 다소 비슷해도 관념이 뚜렷하게 다르면 혼동가능성이 낮아질 수 있다는 점은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미국 판례 중에는 같은 단어라도 지정상품에 따라 관념이 달라지면 유사성이 부정된 사례가 있습니다
(“CATFISH BOBBERS”라는 생선 상표와 “BOBBER”라는 식당서비스 상표는, 상품별로 ‘BOBBER’가 갖는 관념 자체가 달라 혼동이 부정됐습니다).
EU 편에서 다룬 Picasso/Picaro의 ‘개념적 상쇄’와 사실상 같은 사고방식입니다.
4. 지정상품의 대조 : 유사군코드 vs 상품 견련성, 그리고 ‘Something More’
한국 상표 심사에서 지정상품 간 유사성을 가르는 실무상 이정표는 특허청이 고안한 ‘유사군코드’ 시스템입니다.
대법원 판례는 상품의 용도, 형상, 품질, 유통 채널 등 거래 실정을 종합 고려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지만, 실무에서 심사관은 출원상표의 지정상품이 선등록상표와 같은 유사군코드를 공유하면 대체로 유사 상품으로 판단해 신속하게 심사를 진행합니다.
이 방식은 예측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실제로는 전혀 겹칠 일이 없는 이종 업종이 코드 체계상의 한계로 묶여 무차별적인 거절을 받는 경직성도 함께 갖고 있습니다.
미국에는 이런 자의적 행정 분류가 없습니다.
USPTO는 니스(NICE) 분류상 같은 류에 속하는지에 얽매이지 않고, 전적으로 ‘상품의 견련성(relatedness of goods)’ 법리로 심사합니다.
상품 견련성이란, 소비자가 유사한 상표를 두 제품군에서 마주쳤을 때 “같은 회사 제품 아닌가, 라이선스나 제휴 관계가 있는 것 아닌가” 하고 합리적으로 오인할 만큼 두 상품 사이에 유기적 긴밀성이 있는지를 뜻합니다.
상품이 동일하거나 경쟁 관계일 필요는 없고, 관련성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대표적으로 Recot, Inc. v. M.C. Becton*(214 F.3d 1322 (Fed. Cir. 2000)) 사건에서는 애완동물 간식과 사람이 먹는 스낵 사이에서도 출처혼동 가능성이 인정되었습니다.
다만 상품과 서비스 사이의 관련성이 자명하지 않을 때는 단순한 관련성만으로 부족하고, 이른바 ‘Something More(그 이상의 무언가)’ 원칙이 요구됩니다.
In re Coors Brewing Co.(343 F.3d 1340 (Fed. Cir. 2003))는 맥주와 레스토랑 서비스 사이의 관계를 다루면서, 단순히 “맥주가 레스토랑에서 팔린다”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하고 관련성을 뒷받침할 추가 증거가 필요하다고 판시했습니다. 최근 TTAB의 In re 1729 Investments LLC(Serial No. 90694523, 2023) 사건에서도, 심사관이 제출한 다수의 제3자 등록 증거만으로는 와인과 레스토랑·바 서비스 사이의 ‘Something More’가 충족되지 않는다고 보아 ‘RAO’S’ 상표의 거절을 취소했습니다. 특히 출원인이 지정상품을 “레스토랑에서 판매되는 것은 제외”라는 식으로 거래경로를 스스로 제한해 명시한 점이 결정적이었습니다.
이 지점에서 실무적으로 중요한 시사점이 나옵니다.
미국에 출원할 때는 한국식의 넓고 두루뭉술한 지정상품 기재(“제9류 전자기기 일체”, “제25류 의류”)를 그대로 가져가면 안 됩니다. 넓은 지정상품은 그만큼 충돌 가능성이 있는 선등록상표의 수를 늘리고, USPTO 심사관에게 오히려 구체적 명시와 축소 수정을 요구받는 계기가 됩니다. 반대로 지정상품을 실제 거래경로에 맞게 정교하게 좁히면, 위 ‘RAO’S’ 사건처럼 ‘Something More’ 부재를 주장하며 거절을 극복할 여지가 생깁니다.
5. 식별력이 약한 상표와 ‘Crowded Field’
상표 분쟁에서 흔한 오해가 있습니다. “같은 단어가 들어가니 무조건 위험하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공통 단어가 얼마나 강한 식별력을 갖는지가 훨씬 중요합니다.
미국에서는 암시적(suggestive)이거나 기술적(descriptive)인 상표, 또는 유사 요소가 다수 사용되는 ‘혼잡한 분야(crowded field)’의 상표는 좁은 보호범위만 인정됩니다.
Juice Generation, Inc. v. GS Enterprises LLC(794 F.3d 1334 (Fed. Cir. 2015))와 Jack Wolfskin v. Millennium Sports(Fed. Cir. 2015) 판결은, 제3자의 사용·등록 증거가 구체적인 매출 규모를 입증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강력한(powerful on its face)” 증거가 되어 해당 상표의 식별력이 약함을 보여줄 수 있다고 판시했습니다.
예컨대 의류 분야에서 ‘MATCH’가 이미 다수 등록·사용되고 있다면, 그 단어만으로는 좁은 보호범위밖에 인정받지 못합니다.
한국에서도 같은 취지의 법리가 있습니다.
대법원은 식별력이 없거나 미약한 부분은 요부가 될 수 없고, 공통요소가 다수의 상표에 이미 등록되어 있다면 그 요소의 식별력은 약하게 평가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결국 미국과 한국 모두 “공통 단어의 식별력 강약이 관건”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지만, 미국은 crowded field라는 별도의 이름을 가진 항변 도구로 이를 적극 활용한다는 점이 실무상 차이입니다.
거절이유를 통지받았을 때 경쟁사들의 유사 등록·사용 현황을 체계적으로 수집해 제출하는 것이, 미국에서는 매우 효과적인 방어 전략이 됩니다.
6. 결합상표와 상표군(Family of Marks)
결합상표에 관한 원칙 자체는 한미 양국이 닮아 있습니다.
원칙적으로 상표 전체를 보되, 그중 소비자에게 강한 인상을 주는 요소가 있다면 그 부분에 무게를 둡니다. 한국의 요부관찰 법리와 미국의 분리관찰 금지 원칙이 결과적으로 수렴하는 지점입니다.
그런데 미국에는 한국에 없는 독자적 개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family of marks(연속상표군)’ 법리입니다.
이는 한 기업이 공통된 특징(접두어, 접미어 등)을 반복 사용하는 여러 상표를 운영해 왔고, 공중이 그 공통 특징 자체를 특정 기업과 연관 짓도록 인식하게 된 경우, 새로운 유사 상표도 그 상표군의 일부로 오인될 수 있다는 법리입니다.
대표적인 판례가 J & J Snack Foods Corp. v. McDonald’s Corp.*(932 F.2d 1460 (Fed. Cir. 1991))입니다.
맥도날드는 McMUFFIN, McNUGGET, McCHICKEN, McRIB 등 ‘Mc-‘ 접두어를 오랜 기간 광범위하게 광고·사용해 왔고, 법원은 이를 근거로 ‘McPRETZEL’ 상표의 등록을 저지했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단순히 유사한 상표를 여러 개 등록해 두었다”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실제 시장에서 그 공통요소를 통해 공중이 특정 기업의 브랜드군을 떠올릴 정도의 광고·판매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또한 이 법리는 이의신청이나 등록취소 같은 당사자계 절차에서 상표권자(opposer)만 주장할 수 있고, 심사 단계에서 출원인이 거절을 극복하기 위한 항변으로는 쓸 수 없습니다.
한국은 이런 독립된 ‘상표 패밀리’ 법리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한국에서는 동일한 공통요소가 여러 권리자에 의해 다수 등록되어 있으면, 그 공통요소의 식별력이 약하다고 평가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만 특정 공통요소를 한 기업이 장기간 집중적으로 사용해 소비자가 그 요소를 특정 기업의 출처표시로 인식하게 되었다면, 사용에 의한 식별력 취득이라는 별도의 경로로 유사한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이 차이가 브랜드 전략에 직결됩니다.
미국에서 시리즈 브랜드 전략을 구사하려면, 등록만 해두는 것이 아니라 각 시리즈 상표의 실제 광고·판매 증거를 광고자료, 카탈로그, 웹사이트 사용내역 등의 형태로 체계적으로 축적해 두어야 합니다.
7. 혼동가능성과 저명상표 희석은 구분해야 한다
EU 편에서 다룬 것처럼, 혼동가능성과 저명상표 희석은 전혀 다른 개념입니다.
혼동가능성은 소비자가 출처를 오인하는 문제이고, 희석은 출처를 혼동하지 않더라도 유명 상표의 식별력이나 명성이 약화되는 문제입니다.
미국은 2006년 상표희석개정법(Trademark Dilution Revision Act, TDRA, 15 U.S.C. §1125(c))으로 이를 명문화했습니다.
미국 일반 소비대중에게 널리 인식된 ‘저명상표(famous mark)’는 혼동가능성이 없어도 별도로 보호받습니다. TDRA는 희석을 두 갈래로 나눕니다.
Blurring(식별력 약화)은 유사 표지와 저명상표 사이의 연상이 저명상표의 단일한 출처표시 기능을 손상시키는 경우입니다.
가상의 예로, “구글 배관공사”나 “롤렉스 커피” 같은 상표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습니다.
Tarnishment(명성 훼손)는 저명상표를 저급하거나 불건전한 맥락에 사용해 이미지를 훼손하는 경우입니다.
스타벅스가 소규모 커피 로스터의 ‘Charbucks’ 상표를 상대로 제기한 Starbucks Corp. v. Wolfe’s Borough Coffee(588 F.3d 97 (2d Cir. 2009)) 사건이 대표적입니다.
한국도 2014년 상표법 개정으로 유사한 조항을 두고 있습니다.
상표법 제34조 제1항 제11호 후단은 저명상표의 식별력 또는 명성을 손상시킬 염려가 있는 상표를 등록받을 수 없도록 규정합니다.
그리고 이 조항이 실제로 작동한 첫 사례가 바로 2023년 대법원의 ‘LEGO/레고켐’ 판결(대법원 2023. 11. 16. 선고 2020후11943 판결)입니다.
완구류로 저명한 ‘LEGO’와 의약품 분야의 ‘LEGOCHEMPHARMA’ 사이의 분쟁에서, 대법원은 소비자가 의약품 회사를 실제 레고와 혼동하지 않더라도, ‘LEGO’라는 저명상표가 가진 ‘단일한 출처를 표시하는 기능’이 손상될 염려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등록상표 중 ‘CHEM(chemistry)’, ‘PHARMA(pharmaceutical)’ 부분은 지정상품의 성질을 설명하는 식별력 없는 요소로 보아 요부를 ‘LEGO’로 특정하고, 그 결과 결합상표 전체가 저명상표의 식별력을 손상시킬 수 있다고 결론지었습니다. 이 판결은 사실상 미국의 blurring 법리와 같은 방향의 결론에, 다른 조문 구조로 도달한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전략적 구분이 필요합니다.
상대방 상표가 같은 업종에서 소비자 혼동을 일으킨다면 혼동가능성을 주장하고, 전혀 다른 업종이지만 자사 상표가 매우 유명하고 명성 손상 위험이 있다면 희석 법리를 검토해야 합니다. 저명상표를 보유한 기업이라면 미국 진출 시 TDRA §43(c)를 혼동가능성 주장과 함께 병행 청구하는 전략을 반드시 고려해야 합니다.
8. 미국에만 있는 개념 : 역혼동(Reverse Confusion)
미국 상표법에는 한국에 뚜렷한 대응 법리가 없는 독자적 개념이 하나 더 있습니다. ‘역혼동(reverse confusion)’입니다.
통상적인 혼동은 후발 사용자가 선사용자의 명성에 무임승차하는 구도를 전제로 합니다. 그런데 역혼동은 정반대입니다. 자본력이 큰 후발 대기업이 대규모 광고로 시장을 포화시키면, 오히려 원래 그 상표를 먼저 쓰던 소규모 선사용자의 상품이 후발 대기업의 것으로 오인되는 상황입니다. Sands, Taylor & Wood Co. v. Quaker Oats Co.(978 F.2d 947 (7th Cir. 1992)) 판결이 이 법리를 명확히 했습니다.
한국에서도 하급심에서 역혼동이 논의된 사례가 없지 않지만, 대법원 차원에서 독립된 법리로 확립되어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미국에 소규모로 진출하는 한국 기업이라면, 자사 상표를 먼저 사용하고 있었는데 미국 현지의 대기업이 유사 상표로 대대적인 마케팅을 펼치는 경우 역혼동 법리를 원용할 여지가 있다는 점을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반대로 미국에서 공격적으로 브랜드를 확장하려는 기업이라면, 뜻하지 않게 자신이 역혼동의 ‘가해자’로 지목될 리스크도 함께 관리해야 합니다.
9. 증명표장과 단체표장
Lanham Act는 증명표장(certification mark)과 단체표장(collective mark)을 통상의 상표와 구분해 규정합니다(제4조, 제45조).
증명표장은 상품·서비스의 지역적 출처, 재료, 제조방식, 품질 등을 증명하기 위해 사용되는 표장으로, 그 소유자가 스스로 사용할 수 없고 기준을 충족하는 누구에게나 사용을 허락해야 한다는 독특한 구조를 갖습니다. “Certified Maine Lobster”나 울마크(WOOLMARK)가 대표적 예입니다.
단체표장은 협동조합이나 협회 같은 단체가 그 구성원에게 사용하도록 하는 표장, 또는 단체 소속을 나타내는 표장입니다.
이들 표장도 통상상표와 마찬가지로 혼동가능성 심사의 대상이 됩니다. 한국도 단체표장, 지리적 표시 단체표장, 증명표장 제도를 두고 있어 큰 틀은 유사하지만, 미국 증명표장의 ‘소유자 불사용·강제 라이선스’ 구조는 실무 설계 시 특히 유의해야 할 대목입니다.
10. 사용주의와 부정출원 : Fraud on the USPTO
미국은 사용주의(use-based) 국가입니다.
출원 시 실제 사용 중이거나(§1(a)), 진정한 사용의사(bona fide intention to use, §1(b))가 있어야 합니다. 이 요건 자체가 한국식의 광범위한 지정상품 기재 관행을 억제하는 구조적 장치로 작동합니다.
사용하지 않는 상품을 사용 중이라고 허위로 기재하면 ‘fraud on the USPTO’ 문제가 됩니다. In re Bose Corp.(580 F.3d 1240 (Fed. Cir. 2009)) 판결은 “출원인이나 등록권자가 USPTO를 기만할 의도로, 알면서 허위의 중요사실을 진술한 경우에만” 사기로 취득된 것으로 본다는 엄격한 기준을 세웠습니다. 단순한 착오나 부주의만으로는 부족하고, 기만의 주관적 의도가 명백한 증거로 입증되어야 합니다.
이 지점에서 EU 편에서 다룬 SkyKick 판결과 자연스럽게 비교됩니다.
EU는 SkyKick UK Ltd v Sky Ltd(2024) 판결에서, 사용 의사 없이 지나치게 광범위한 지정상품으로 출원한 것이 악의(bad faith)로 인정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미국은 애초에 실사용·사용의사 요건이 있기 때문에 지정상품이 상대적으로 좁게 작성되는 경향이 있어, SkyKick식 문제가 구조적으로 덜 발생합니다. 반면 한국은 등록주의를 취하기 때문에 사용의사를 엄격히 심사하지 않지만, 부정한 목적의 모방출원(제34조 제1항 제13호)이나 등록 후 3년간 불사용에 따른 취소심판(제119조)으로 유사한 기능을 수행합니다.
한국 기업이 미국에 출원할 때 실무적으로 중요한 것은, 지정상품을 실제 사업계획에 정확히 맞추어 기재하는 것입니다. 향후 사업 확장을 염두에 두고 넓게 기재하고 싶은 유혹이 있겠지만, 미국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상품을 넓게 기재했다가 후일 등록 취소나 fraud 주장에 노출될 수 있습니다.
11. 공존동의제도(Consent Agreement)의 실무적 간극
상표권자 사이의 합의로 후출원 상표의 공존 등록을 허용하는 제도는 한미 양국 실무의 차이를 잘 보여줍니다.
한국은 2024년 5월 1일 개정 상표법 시행으로 공존동의제도를 처음 도입했습니다. 다만 상표법 제34조 제1항 제7호 및 제35조 제6항 단서에 따라, 표장과 지정상품이 완전히 동일한 경우에는 선행권리자의 동의가 있어도 공존 등록이 허용되지 않습니다. 또한 기한이나 지역을 한정하는 ‘조건부 동의’나 ‘포괄적 동의’는 인정되지 않고,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동의서만 유효한 서식으로 받아들여집니다.
미국의 실무는 훨씬 유연합니다. 앞서 살펴본 DuPont 제10요소(시장 인터페이스)에 기반해, 표장과 상품이 완전히 동일하더라도 구체적인 상호 약정을 담은 동의서라면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집니다. In re Four Seasons Hotels Ltd.(987 F.2d 1565 (Fed. Cir. 1993))와 In re Dare Foods(2022 USPQ2d 291 (TTAB 2022)) 판결은, 혼동방지를 위한 구체적 조치를 담은 동의서에 상당한 비중을 부여하며 USPTO가 정당한 이유 없이 당사자들의 시장 판단을 대체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습니다.
여기서 실무적으로 중요한 구분이 있습니다.
단순히 “우리는 혼동이 없다고 믿으므로 등록에 동의한다”고만 짧게 적은 ‘단순 동의서(naked consent)’는 USPTO 심사관에게 큰 비중을 인정받지 못합니다.
In re Mastic Inc.(829 F.2d 1114 (Fed. Cir. 1987)), In re Bay State Brewing*(117 USPQ2d 1958 (TTAB 2016)) 같은 판례들은 이런 단순 동의서가 거절을 극복하는 데 충분하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반대로 유통 채널의 물리적·온라인 이원화, 패키징 디자인 차별화, 특정 안내 문구의 병기, 실제 혼동 발생 시 상호 협조 프로토콜 같은 구체적 조항을 담은 ‘상세 동의서(detailed consent agreement)’는 거절 극복에 강력한 효과를 발휘합니다.
12. 기업을 위한 실무 전략
1) 출원 전 스크리닝은 발음·의미까지 입체적으로
한국 기업은 흔히 한국 특허청 키프리스나 국내 포털의 영문 텍스트 매칭 검색 수준에 그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청각적으로 유사하게 변형된 표장까지 폭넓게 탐색해 §2(d) 거절이유를 도출합니다. 현지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시각·청각·관념 세 차원에서 상업적 인상이 겹치는지 사전에 철저히 검토해야 합니다.
2) 지정상품은 좁고 정교하게
한국식의 포괄적 지정상품 기재(“제9류 전자기기 일체”)를 그대로 가져가면 USPTO의 구체화 요구를 받을 뿐 아니라, 충돌 가능한 선등록상표의 범위 자체를 넓혀버립니다.
실제 사업계획과 거래경로에 맞춰 정교하게 세분화된 지정상품을 설계하는 것이 오히려 등록 가능성을 높입니다.
3) 거절이유 통지서(Office Action)는 DuPont 요소별로 전술화
§2(d) 거절을 받았다고 곧바로 상표를 포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경쟁사의 유사 등록·사용 현황을 모아 crowded field(제6요소)를 주장하거나, 구매자층의 전문성과 신중한 구매 행태(제4요소)를 소명하거나,
지정상품을 거래경로 기준으로 좁혀 ‘Something More’ 부재를 주장하는 등, 요소별로 대응 논리를 구성할 수 있습니다.
4) 시리즈 브랜드는 사용 증거를 축적
‘Mc-‘처럼 공통요소를 활용한 브랜드 확장을 계획한다면, 등록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광고자료, 판매자료, 웹사이트 사용내역을 체계적으로 축적해 두어야 향후 이의신청이나 취소심판에서 family of marks를 주장할 수 있습니다.
5) 저명상표라면 희석 청구도 함께 준비
혼동가능성만으로 대응이 어려운 이종업종 침해 사안이라면, TDRA §43(c)의 blurring·tarnishment 주장을 병행 검토해야 합니다.
한국에서도 레고켐 판결 이후 희석 주장이 더 현실적인 선택지가 되었습니다.
6) 공존이 불가피하다면 ‘상세’ 동의서로
경쟁사와의 합의로 공존을 모색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단순 동의서로는 부족합니다.
유통 채널 분리, 디자인 차별화, 혼동 발생 시 협조 절차 등 구체적 조항을 갖춘 동의서를 준비해야 실제로 거절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결론 : 미국 상표 전략은 한국식 판단만으로는 부족하다
미국과 한국 상표법은 모두 소비자의 출처 오인·혼동을 방지한다는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결합상표의 요부 판단, 약한 식별력 요소의 좁은 보호범위, 관념 차이에 따른 혼동 감소 등에서는 두 법제가 상당히 유사한 방향으로 수렴합니다.
그러나 판단 구조의 근본적인 차이는 분명합니다.
미국은 상표 유사성과 상품 관련성을 하나의 저울 위에서 종합하는 슬라이딩 스케일 방식을 취하는 반면, 한국은 제34조 제1항 제7호에서 두 요건을 각각 독립적으로 충족해야 하는 구조를 취합니다.
또한 family of marks, 역혼동, TDRA 희석, fraud on the USPTO처럼 미국에만 뚜렷하게 발달한 법리들도 있습니다.
따라서 미국 시장에 진출하려는 기업은 한국에서 등록 가능하다는 이유만으로 미국에서도 안전하다고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DuPont 다요소 판단, 슬라이딩 스케일 구조, family of marks, 저명상표 희석, 사용주의에 기반한 지정상품 설계를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해외 상표 출원 전에는 다음 네 가지를 반드시 점검해야 합니다.
> 상표 자체가 선행상표와 얼마나 유사한지
> 지정상품이 실제 거래경로와 얼마나 가까운지, 그리고 얼마나 정교하게 좁혀져 있는지
> 공통된 부분이 강한 식별력을 가지는지, crowded field에 해당하지 않는지
> 저명상표 보유 여부에 따라 희석 법리까지 검토해야 하는지
이러한 검토를 거쳐야만 미국 진출 과정에서 불필요한 거절, 이의신청, 등록취소, 침해분쟁을 줄일 수 있습니다.
신무연 변리사
기율특허법인 대표
WTR 1000, IAM Patent 1000, IP Stars 선정 변리사
《특허는 전략이다》, 《상표 전쟁》, 《특허로 말하라》 저자
10년 이상 미국·유럽·중국 등 국제 특허 및 상표 전략 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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